항미원조전사 13-8 제2차 전역 평가

in hive-115078 •  19 days ago 

1 전과 및 피해(70)

총 3,6000명의 적을 섬멸(미군, 24,000)
중국군 30,700명

사상비율은 1:0.85

양양을 제외한 38도선 수복 및 38선 이남의 웅진반도와 연안반도 확보

2, 총평

제9병단을 적시에 동부전선에 투입함으로써 중국군의 우세를 확보
계획적으로 주력부대를 은폐 철수시키고 고의로 약하게 보이게 해 적의 착각를 확대, 유엔군을 중국군이 익숙한 전장으로 진격토록 유인후 기습적인 타격으로 원만한 승리를 달성

당시 중국군과 유엔군의 병력비율을 다음과 같았음

유엔군은 2개의 미군사단과 영-터키 각 1여단을 투입, 일선의 병력은 5개군단 12개사단 3개여단, 1개공수여대등 총 22만여명

중국군은 6개군 18개사단의 23만명으로 병력도 열세

“제2차 전역에서 중국군의 기본임무는 조선의 전국을 전환시키는 것이었다”(70)

조선의 전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 동부전선의 적에 대한 타격을 가하여야 했고 제9병단을 적시에 조선에 투입함으로써 이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제2차 전역의 목적은 공수전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의 전국을 전환시키는 것’이라는 것이 유엔군과 한국군의 공세를 수세로 전환시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제2차 전역으로 38선을 확보한 것은 부과적인 성과로 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한다. \

3 작전수행

전역우회와 퇴로차단을 전역계획의 중점으로 삼았음

특히 서부전선의 중공군은 적의 우측방으로부터 대담하게 2중의 전역우회를 실시, 측후방으로부터의 돌격역량을 강화

각종 원인으로 중국군의 전역우회 계획이 완전하게 실현될 수 없었으나 중국군 113사단이 삼소리 용원리까지 들어가 미제9군단의 퇴로를 차단하고 중국군 정면부대의 공격이 실시되면서 적은 모든 전선에서 철수하게 되었고 운동중에 적군을 대량으로 섬멸할 수 있었음

중국군은 병력을 집중하여 적군의 우측방 허약한 부분인 덕천, 영원(국군담당지역)을 선택하여 전역의 돌파구를 열고, 그 후 다시 우회하는 기동방법을 실시. 우회실시중 제113사단은 지름길을 택해 극도의 피로를 이겨내면서 시가에 맞추어 지정된 위치에 도달해서 적군의 퇴로를 차단하여 전역 승리획득에 중대한 기여를 함(72)

만약 외곽우회부대가 적의 저지를 받지 않았다면 숙천에 정시에 도착하여 더욱 결정적인 승리을 거두었을 것이다 .

동부전선에서 만약 11월 25일 혹은 26일, 적이 안정되지 못한 틈을 타서 먼저 사창리의 적을 섬멸하고, 하통리 함흥 및 영흥으로 진출하여 병참선을 위협할 수 있었다면 더 큰 승리가 가능했을 것(72)

  1. 전역우회와 분할포위

전역우회는 운동중인 적을 섬멸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할 뿐이며, 적군을 섬멸하려면 전술적인 분할포위를 진행하여 적을 몇개의 작은 부분으로 분할시켜야 가능

  1. 후방보급의 보장

공군의 위협으로 야간 수송만 가능하여 작전부대는 휴대식량과 탄약량만 의지했기 때문에 1주 전후 적전밖에 지속할 수 없었음. 전역 지속시간과부대 기동에 큰 제약을 받아 마음놓고 작전할 수 없어 전역의 승리와 규모에 상당한 영향

중국군은 최초 서부전선에서 2개군 및 2개사단으로 전역우회 구상했으나 식량의 곤란으로 2개군으로 축소

동부전선에서 제9병단의 예비인 제26군이 장진호 전선으로 신속하게 이동하지 못한 것도 식량문제 때문이었음

제9병단은 동부전선이 산이 높고 길이 험하며, 기후가 유별나게 춥고 인적이 드물다는 상황에 대한 조사연구가 충분하지 못했고, 혹한지대의 작전경험과 준비가 부족한데가 보급이 보장되지못해 대량의 동상 및 기아로 인한 병력손실로 작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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